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는 모든 기억을 잃어갔습니다. 자식들의 이름도, 평생을 산 집의 위치도 잊어버리셨죠. 가족들은 할머니의 텅 빈 눈동자를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. 어느 날, 평소 무뚝뚝했던 아들이 병실을 찾았습니다. 할머니는 그날도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멍하니 창밖만 보고 계셨죠. 아들이 씁쓸하게 돌아서려던 찰나, 할머니가 아들의 소매를 꼭 붙잡으며 조용히 속삭였습니다. "저기요, 우리 아들한테는 비밀로 해줘요." 아들이 당황하며 "네? 뭘요?"라고 묻자, 할머니는 품속에서 다 찌그러진 귤 하나를 꺼내며 웃으셨습니다. "이거, 우리 막내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. 이따가 오면 주려고 숨겨놨는데... 내가 자꾸 까먹어서 그런데, 그놈 오면 나 대신 꼭 좀 전해줘요. 나 기다리고 있다고." 아들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. 할머니는 '아들'이라는 이름도, 얼굴도 잊어버렸지만, '아들을 사랑하는 마음'만은 지워지지 않는 마지막 조각으로 남겨두셨던 겁니다. |